NAS를 처음 켜면 반드시 마주치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디스크를 어떻게 묶을지 고르는 화면에 RAID 0, 1, 5, 6, 10, 그리고 시놀로지라면 SHR까지 나오는데, 뜻을 모르면 아무거나 누르게 됩니다. 문제는 이 선택이 나중에 바꾸기 어렵고, 쓸 수 있는 용량과 데이터의 생존 여부를 동시에 결정한다는 점입니다. 이 글에서는 각 방식의 차이를 4TB 디스크 4개라는 구체적인 예로 계산해 보고, 가정용이라면 무엇을 골라야 하는지까지 정리합니다.
RAID를 30초 만에 이해하기
RAID는 여러 개의 디스크를 묶어 하나의 저장 공간처럼 쓰는 기술입니다. 묶는 이유는 딱 두 가지, 안전과 속도·용량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맞바꾸는 관계입니다. 디스크가 하나 죽어도 데이터를 지키려면, 그만큼의 공간을 보험료로 떼어놔야 하니까요. RAID 종류가 여러 개인 이유는 결국 “보험료를 얼마나 낼 것인가”에 대한 답이 여러 개이기 때문입니다.
패리티(Parity) — RAID 5·6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데이터를 통째로 복사하는 대신, “복원에 필요한 계산값”만 저장해두는 방식입니다. 3+5=8이라는 값을 알고 있으면, 5를 잃어버려도 8-3으로 되살릴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통째 복사보다 공간을 훨씬 아낄 수 있습니다.
한눈에 보는 RAID 비교표
먼저 전체 그림입니다. 아래 표만 이해해도 이 글의 90%는 얻어 가시는 겁니다.
| 방식 | 최소 디스크 | 쓸 수 있는 용량 | 버틸 수 있는 고장 | 속도 | 추천 대상 |
|---|---|---|---|---|---|
| RAID 0 | 2개 | 전부 (100%) | 0개 | 가장 빠름 | 날아가도 되는 작업용 |
| RAID 1 | 2개 | 1개 분량 (50%) | 1개 | 읽기 빠름 | 2베이 가정용 NAS |
| RAID 5 | 3개 | N-1개 분량 | 1개 | 빠름 | 4베이 이상, 용량 중시 |
| RAID 6 | 4개 | N-2개 분량 | 2개 | 쓰기 느림 | 대용량 디스크, 안전 중시 |
| RAID 10 | 4개 | 절반 (50%) | 1개 (운 좋으면 2개) | 매우 빠름 | 속도가 돈인 환경 |
| SHR | 1개 | 가장 큰 디스크 1개 제외 | 1개 | RAID 5급 | 시놀로지 대부분 |
RAID 0과 1 — 두 극단
RAID 0: 보험을 아예 안 드는 방식
데이터를 조각내서 여러 디스크에 동시에 씁니다. 용량은 100% 다 쓰고 속도도 가장 빠릅니다. 대신 디스크 하나만 죽어도 전부 날아갑니다.
주의할 게 있습니다. 디스크가 늘어날수록 안전해지는 게 아니라 더 위험해집니다. 디스크 4개를 RAID 0으로 묶으면, 넷 중 하나만 죽어도 끝이니 고장 확률이 4배가 되는 셈입니다.
RAID 1: 통째로 복사해두기
두 디스크에 완전히 똑같은 내용을 씁니다. 중요한 서류를 두 장 복사해 따로 두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가 죽어도 나머지 하나가 그대로 살아있습니다.
대신 용량의 절반이 보험료입니다. 4TB 두 개를 넣어도 쓸 수 있는 건 4TB입니다. 그래도 2베이 NAS를 쓰는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이게 정답입니다. 구조가 단순해서 복구도 가장 확실하거든요.
RAID 5 — 균형점, 그런데 함정이 있습니다
디스크 3개 이상을 묶으면서, 딱 1개 분량만 보험료로 떼는 방식입니다. 4개를 묶으면 3개 분량을 쓰면서 1개 고장을 버팁니다. 용량 효율이 좋아서 4베이 NAS에서 가장 인기가 많습니다.
그런데 대용량 디스크 시대에 접어들면서 RAID 5에는 짚어봐야 할 문제가 생겼습니다.
재구축(Rebuild) 중이 가장 위험한 순간
디스크 하나가 죽으면 새 디스크로 갈아 끼우고 데이터를 다시 만드는데, 이걸 재구축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가 겹칩니다.
- 시간이 깁니다. 요즘 흔한 8TB 이상 디스크는 재구축에 수십 시간, 길면 며칠이 걸립니다.
- 남은 디스크가 혹사당합니다. 재구축은 살아있는 모든 디스크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읽습니다. 평소보다 훨씬 큰 부하가 며칠간 걸립니다.
문제는 이 디스크들이 대개 같은 날 사서 같이 늙은 형제들이라는 점입니다. 한 개가 수명이 다했다면 나머지도 비슷한 시기일 가능성이 큽니다. 재구축 중에 두 번째 디스크가 죽으면, RAID 5는 그대로 끝입니다.
주의 — 하드디스크 스펙표에는 URE(복구 불가능한 읽기 오류)라는 항목이 있습니다. 일반 제품은 보통 1014비트당 1회 수준인데, 이게 대략 12TB를 읽을 때마다 한 번 오류가 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용량 RAID 5 재구축은 이 수치에 근접하게 읽어야 해서, 이론적으로 재구축 실패 위험이 있습니다. 다만 실제 현장 데이터는 이 수치가 보수적이라는 견해도 많아 “RAID 5는 이제 못 쓴다”는 식의 단정은 과장입니다. 디스크가 커질수록 RAID 6을 고려할 이유가 늘어난다 정도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RAID 6과 10 — 언제 필요한가
RAID 6은 보험료를 2개 분량으로 늘린 것입니다. 디스크 2개가 동시에 죽어도 살아남습니다. 위에서 말한 재구축 중 2차 고장 시나리오를 정면으로 막아주죠. 8TB 이상 디스크를 4개 넘게 쓴다면 RAID 5보다 이쪽을 권합니다. 대신 계산이 복잡해져서 쓰기 속도가 눈에 띄게 느립니다.
RAID 10은 RAID 1로 짝을 지은 뒤 그 짝들을 RAID 0으로 묶습니다. 복사본이 있으니 안전하고, 조각내서 쓰니 빠릅니다. 재구축도 짝꿍 디스크만 통째로 복사하면 되니 RAID 5·6보다 훨씬 빠르고 안전합니다.
단점은 용량 절반이 사라진다는 것. 가정용 NAS에서 4TB 4개 넣고 8TB만 쓰는 건 아깝습니다. 데이터베이스나 가상머신처럼 속도가 곧 돈인 환경용입니다.
시놀로지 쓰신다면 SHR을 먼저 보세요
시놀로지 NAS라면 목록에 SHR(Synology Hybrid RAID)이 있고, 기본값으로 잡혀 있습니다. 그냥 넘기기 쉬운데, 가정용에선 이게 가장 합리적인 선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 RAID의 불편한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디스크 용량이 다르면 가장 작은 디스크에 맞춰집니다. 4TB 두 개에 8TB 하나를 RAID 5로 묶으면, 8TB 디스크의 절반은 그냥 버려집니다.
SHR은 이 낭비를 없앱니다. 서로 다른 용량을 섞어도 남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해줍니다. 안전 수준은 RAID 5와 같고(1개 고장 방어), SHR-2는 RAID 6처럼 2개까지 버팁니다.
| 상황 | RAID 5로 묶으면 | SHR로 묶으면 |
|---|---|---|
| 4TB + 4TB + 8TB | 8TB (8TB 중 4TB 버림) | 12TB |
| 나중에 디스크 하나만 큰 걸로 교체 | 용량 안 늘어남 | 단계적으로 늘어남 |
디스크를 한 번에 다 사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하나씩 늘려가는 가정용 패턴에는 SHR이 훨씬 유리합니다.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기본값 SHR을 그대로 두세요.
4TB 디스크 4개면 실제로 몇 TB를 쓸까
이론은 됐고, 숫자로 봅시다. 4TB 디스크 4개(도합 16TB)를 각 방식으로 묶었을 때입니다.
| 방식 | 계산식 | 쓸 수 있는 용량 | 보험료 |
|---|---|---|---|
| RAID 0 | 4TB × 4 | 16TB | 0TB |
| RAID 5 | 4TB × (4-1) | 12TB | 4TB |
| SHR | 가장 큰 것 1개 제외 | 12TB | 4TB |
| RAID 6 | 4TB × (4-2) | 8TB | 8TB |
| RAID 10 | 16TB ÷ 2 | 8TB | 8TB |
| RAID 1 | 가장 작은 것 1개 | 4TB | 12TB |
그런데 왜 12TB가 아니라 10.9TB로 보일까
위 계산대로 RAID 5를 구성하면 12TB가 나와야 하는데, 막상 화면에는 약 10.9TB로 표시됩니다. 고장도 오류도 아닙니다.
제조사는 1TB를 1,000,000,000,000바이트로 계산하지만, 운영체제는 1TB를 1,099,511,627,776바이트로 셉니다. 같은 디스크인데 세는 단위가 달라서 약 9% 차이가 납니다. 4TB 디스크 하나는 실제로 3.64TB로 잡히고, 3개면 10.9TB가 되는 겁니다.
여기에 시스템 영역까지 조금 빠지니, 표기 용량의 90% 정도가 실사용량이라고 미리 계산해두시면 나중에 당황할 일이 없습니다.
RAID는 백업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 딱 하나만 가져가신다면 이겁니다. RAID를 구성해두면 안심이 되지만, RAID는 디스크 고장이라는 단 한 가지 사고만 막아줍니다.
RAID가 못 막는 것들입니다.
- 실수로 삭제 — 지우는 순간 모든 디스크에서 동시에 지워집니다
- 랜섬웨어 — 암호화도 모든 디스크에 실시간으로 반영됩니다
- 화재·침수·도난 — NAS 본체가 통째로 사라지면 RAID고 뭐고 없습니다
- NAS 자체 고장 — 컨트롤러가 죽으면 디스크가 멀쩡해도 못 읽을 수 있습니다
RAID는 가동을 멈추지 않기 위한 장치지 데이터를 보관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진짜 안전은 별도 백업에서 옵니다. 이 얘기는 NAS 데이터 백업은 어떻게 해야 안전할까에서 3-2-1 원칙으로 자세히 다뤘습니다.
그래서 뭘 골라야 하나
| 내 상황 | 답 |
|---|---|
| 2베이 시놀로지, 가족 사진 보관 | SHR (또는 RAID 1) |
| 4베이 이상, 용량이 필요함 | SHR (또는 RAID 5) |
| 8TB 이상 디스크를 4개 넘게 | SHR-2 (또는 RAID 6) |
| 속도가 최우선, 용량 손실 감수 | RAID 10 |
| 날아가도 되는 임시 작업 공간 | RAID 0 |
| 잘 모르겠다 | 기본값(SHR) 그대로 |
자주 묻는 질문
Q. RAID를 나중에 바꿀 수 있나요?
A. 일부는 가능하지만 제약이 많습니다. SHR에서 SHR-2로 가는 것처럼 안전 수준을 올리는 방향은 대체로 되지만, 반대는 어렵습니다. RAID 0에서 다른 걸로 바꾸는 건 사실상 데이터를 다 빼내고 처음부터 다시 구성해야 합니다. 처음에 신중히 고르는 게 정답인 이유입니다.
Q. 디스크 용량을 섞어도 되나요?
A. 일반 RAID는 가장 작은 디스크에 맞춰져 나머지가 버려집니다. SHR은 남는 공간까지 최대한 활용합니다. 용량을 섞을 계획이라면 SHR이 답입니다.
Q. RAID 1이면 디스크 하나 빼서 다른 PC에 꽂아 읽을 수 있나요?
A. 이론상 가능하지만 기대하지 마세요. 시놀로지는 리눅스 파일 시스템을 쓰기 때문에 윈도우 PC에 그냥 꽂으면 못 읽습니다.
Q. RAID 5에 디스크 2개가 동시에 죽으면요?
A. 데이터를 잃습니다. 이게 RAID 6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복구 업체에 맡길 수는 있지만 비용이 크고 성공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Q. RAID를 구성하면 백업은 안 해도 되나요?
A. 아니요.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답변입니다. RAID는 디스크 고장만 막아줄 뿐, 실수·랜섬웨어·화재는 전혀 막지 못합니다.
정리하면
- RAID는 안전과 용량을 맞바꾸는 선택이다. 보험료를 얼마나 낼 것인가의 문제.
- 2베이는 SHR/RAID 1, 4베이 이상은 SHR/RAID 5, 대용량이면 SHR-2/RAID 6.
- 시놀로지라면 기본값 SHR이 대부분 정답. 용량을 섞거나 나중에 늘릴 계획이면 특히.
- 4TB 4개 → RAID 5는 12TB. 단, 화면엔 10.9TB로 보인다(단위 차이).
- RAID를 바꾸는 건 어렵다. 처음에 신중히 고를 것.
- RAID는 백업이 아니다. 별도 백업은 반드시 따로.